태국인의 세계관 연구를 통한 복음제시

태국인의 세계관 연구를 통한 복음제시

박 상선

I. 서론

올해로 복음이 태국에 들어 온지 190년이 되었다. 1828년 8월 23일 독일의 칼 프레드릭 퀴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1803-1851)와 영국의 제이콥 텀린(Jacob Tomlin, 1793-1880) 선교사가 처음으로 태국 땅을 밟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태국 77개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동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태국의 복음화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한 수많은 주의 종들이 있었다. 이들 속에는 1869년에 치앙마이에서는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만으로 치앙마이의 통치자에 의해 몽둥이로 맞고 창에 찔려 순교 당한 태국인 너이쑨야(น้อยสุยะ)와 난차이(หนานชัย)가 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오늘날까지 멈춘 적이 없다. 태국기독교는 4년마다 ‘Congress’ 라는 목회자 전체모임 가운데 교회의 현황을 보고하고 ‘Thai Church Vision’을 선포하며 이 비전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구체적인 행동방침도 정하여 실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태국의 개신교 인구는 아직도 407,785명인 0.64% 밖에 되지 않는다. 태국을 선교사의 무덤이라 표현한다. 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해도 쉽게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전도가 되어 교회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어려운 상황이 오면 이기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점에서 태국인의 세계관을 연구하여 태국인에 맞는 복음을 제시하고 말씀으로 양육함으로 태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II. 본론

태국은 13세기 수코타이 왕국에서부터 불교가 국교이며 오늘날 헌법에 국교로 명시 되지 않았지만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불교를 장려하며 후원하고 있어 태국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인은 불교에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민간신앙을 통해서 해결하고 있다. 또한 태국의 사회적인 구조와 가족의 관습을 볼 때 새로운 문화와 신앙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수치문화(shame culture) 즉 체면문화(face culture)을 가지고 있고 태국어 고유의 특성이 주는 영향과 위와 같은 배경들이 태국인의 특유한 심리와 기질들을 형성하였고 태국인들의 세계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A. 불교의 영향으로 형성된 세계관
1. 태국인은 고통을 해결하는데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즉 인간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이 고통(dukkha)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 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불교의 출발점이다. 석가모니가 이렇게 출발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코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는 주전 6세기 경에 인도 북부의 코살라국에 속하는 조그마한 왕국인 칼필라성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자기를 이어서 왕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왕자가 출가해서 붓다가 되지 못하도록 왕궁의 벽을 높게 세워 고통이 있는 외부세계를 차단하였고, 연일 잔치를 베풀어 인생의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하도록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었다. 간혹 외출을 할 경우 길가에는 꽃을 심는 것 뿐 아니라 깨끗이 청소하고 병자나 죽어가는 노인은 왕자가 지나갈 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몰래 왕궁 밖으로 나가서 목격했던 사건들은 그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노인과 병자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생로병사에 싸여 있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하였고, 마침내 보리수 밑에서 명상의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부처의 깨달음을 통해서 모든 세계가 고통하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고통의 원인은 인간의 욕망, 탐욕, 열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것들이 사라질 때 니르바나(Nirvana, 열반, 적멸, 무존재)에 이를 수 있다. 불교의 고통 해결 방법에 대하여 안점식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볼 때 고통은 욕구의 좌절에서 생긴다. 자기가 원하는 무엇인가가 좌절되었을 때 고통이 생긴다. 그래서 많은 종교가 이런 각도에서 고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불교는 ‘만일 욕구가 좌절되어서 고통이 생기는 것이라면 욕구를 없애면 고통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전개한다. 그런데 어떻게 욕구를 가지지 않을 수 있는가? 불교에서는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불교에서는 영원한 것은 존재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우주의 본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영원불변한 사물인양 착각하여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무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고통의 근원은 이 무지를 깨뜨려야 하는데 “무지를 깨뜨리는 것이 바로 ‘깨달음’인데 ‘깨달음을 얻으면’ 곧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열반은 아픔도, 슬픔도, 눈물도, 고통도 없고 고요한 기쁨의 상태다. 불교에서 이런 상태를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영향으로 태국인은 집착하지 않는 삶 짜이엔(jaiyen, 냉정한 마음, 차분한 마음, 평정심)을 큰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큰 사건이 일어났어도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내거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실수를 하고서도 ‘마이뺀라이!’(maipenrai, 괜찮아)라고 말한다. 냉정함을 잃은 자는 집착하는 자요 ‘마이뺀라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사람도 집착하는 자로 취급하여 무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홍수로 쓸어버리는 무자비한 하나님으로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인간을 사랑하는 분으로 감동하지 않고, 인간에게 스토커와 같이 집착하는 저급한 ‘신’ 하나의 ‘귀신’으로 취급한다.

필자가 17년째 태국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교회개척 사역과 교육사역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전도하여 새신자반, 확신반, 성장반을 하면서 확신반 3주째에 구원간증을 쓰게 하였다. 20명의 구원 간증문을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죄가 해결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작성한 사람은 2명 뿐이고 나머지 18명은 모두 ‘내가 친구의 전도를 받아서’ ‘직장동료의 권유로 교회에 왔는데’,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그때 불렀던 찬양이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마음에 평안함이 임했다!’ ‘내 삶의 복잡한 친구와의 관계,’ ‘직장의 문제,’ ‘가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를 잊을 수 있었다!’ ‘느낌이 너무 좋았다!’ 라고 작성하였다. 이와 같이 태국인들에게는 구원의 문제보다 지금 현실에서 당하는 문제와 고통의 해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최고의 삶의 목표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평안함과 좋은 느낌이 그대로 유지 될 수 없고 다른 더 큰 문제가 생겨 해결되지 않으면 즉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 않으면 스티븐 테일러(Steve Taylor)가 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결함을 조사한 것처럼 교회를 떠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2. 태국인의 삶에 공덕과 업보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태국인들은 ‘탐디 다이디(ทำดีได้ดี, thamdii daidii)’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것을 얻는다’ 라는 사상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태국 불교의 가르침은 공로와 과실의 법에 그 중심을 두고” 있는데 과거 힌두인들은 업보 때문에 고통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고 고통을 이전 생애에서의 잘못된 악행과 도덕적 윤리적인 파괴에 대한 정당한 보응으로 믿고 있는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태국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전생과 연결하고 있다. 전생에 자신이 공덕을 많이 쌓아서 현생에서 좋은 환경과 가문에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사는 것이며 반대로 전생에 공덕을 쌓지 못하여 가난과 아픔과 슬픔 속에 사는 업보 사상을 철저하게 믿고 있다. 아쉽게도 이러한 공과 업보의 사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태국인에게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내생(來生)을 위해서 열심히 공덕을 쌓기 위하여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탐분(ทำบุญ, thambun)을 하게 된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카우프만이 태국 중부지역의 한 마을에서 태국인들이 공덕을 쌓을 때에 어떤 항목에 비중을 두는지 조사하였다. ⓵ 스스로 승려가 되는 것 ⓶ 절을 지어 승가에 바치는 것 ⓷ 아들을 출가시켜 승려로 만드는 것 ⓸ 태국 전역의 불교 사원들로 성지 순례하는 것 ⓹ 절의 보수 및 증축 공사에 헌금하는 것 ⓺ 스님들에게 매일 탁발공양하고 불일과 불교절기에 음식을 공양하는 것 ⓻ 사미승이 되는 것 ⓼ 불일이나 불교의 절기에 절에 가서 팔계를 지키는 것 ⓽ 항상 오계를 준수하는 것 ⓾ 우안거의 종료를 기념하는 까틴 축제 때에 스님들에게 돈과 가사를 선물하는 것 카프만이 조사한 태국인들의 공덕행위는 겉으로 보여지는 행위적인 면들이 대분이다. 그러나 태국 씨리빠툼대학의 촘프 고띠람(Chomphoo Gotiram) 교수는 ‘분(บุญ bun)’이란 단순히 절에 가는 것, 승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것,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 뿐 아니라 “마음을 거룩하게 씻는 도구이다” 라고 말함으로 공덕 쌓는 일을 믿음의 도구로 만들었다. “불교에서는 ‘죄’ 대신에 ‘무지’를 이야기한다. ‘회개’ 대신에 ‘깨달음’을 이야기 한다. 불교에는 ‘회개’라는 개념이 없다. 죄의 개념이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도 필요하지 않다. 불교의 패턴에는 매우 합리적이고 철학적이고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이 말과 촘프 고띠람(Chomphoo Gotiram) 교수의 말을 조합해보면 죄의 개념도 없어 회개도 없지만 공덕으로 인하여 자신의 다음 생에 더 나은 삶을 위해 착한일 하면 스스로 거룩해져 구원을 받는다는 말과 같아진다.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지었던 죄와 같이(창3:5)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자리는 없고 스스로 자신을 섬겨 스스로가 신이 되는 것과 연결 되어 진다.

3. 태국인은 곧 불교인이다.

태국인은 사원 옆에서 태어나서 사원에서 장례함으로 생을 마감한다. 과거에는 학교 또한 절에 있었고 지금도 많은 초중고등 학교들이 사원 안에 있다. 출산, 생일, 약혼, 결혼, 장례, 집을 지을 때에 기둥을 세우는 일, 병이 들었을 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였을 때와 같이 집안의 모든 대소사들은 승려들을 초청하여 불교의식을 하게 된다. 사원은 주민의 집회장이자, 병원, 양로원 구실도 하고 있다. 그만큼 태국인에게 다른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사회와 단체 직장 가정에서 태국인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태국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이다. 서로 처음 만나는 태국인들은 3분 정도 인사를 하고나면 자신이 위에 사람인지 아래 사람인지를 구분하여 알게 된다. 주로 ‘성(Surname)’ 무엇인가 왕이 하사한 가문의 ‘성’, 직업, 학벌에 따라 상하가 구분되는데 과거 싹디나(sakdina) 제도의 잔재이다. 이러한 제도의 잔재 속에서 태국 사회는 관계적인 사회로 위에 사람들과 적절한 관계를 맺음으로 사회에서 출세할 수 있는 구조이다. 아래 사람들은 충성하고 위에 사람은 아래 사람들을 보호하며 거느리고 있다. 모든 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연장자와 연소자의 위치와 높고 낮은 지위의 차이를 철저하게 인식하도록 교육시킨다. 그래서 외식을 할 경우에 대부분 손위의 사람이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국 사회에서 빈부의 문제로 서로 다른 사람을 의지하도록 만든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을 의지하며 아이들은 철저하게 부모를 의지한다.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에서 태국인은 ‘불교인’ 이라는 법칙을 깨뜨리게 되면 그는 모든 곳에서 외로운 섬이 되는 것이다.

태국인의 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자녀가 다른 종교를 갖는 것이다.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공덕을 쌓는 일 가운데 가장 비중 있는 항목은 승려가 되는 것인데 여인들은 승려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승려로 잠시 출가시켜 공덕을 쌓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아들이 개종을 하게 되면 자신을 위해서 공덕을 쌓아 줄 수 없다. 그래서 알렌존슨(Alan R. Johnson)의 소논문 태국인들 안에서 개종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장벽 탐구(Exploring Social Barriers To Conversion Among The Thai)에서 연구한 것과 같이 태국인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개종은 태국인의 정체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반드시 일정기간 승려가 되어 어머니에게 공덕을 쌓아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가정에서 말하지 못하고 숨기게 되며 다시 본래의 불교도로 돌아가게 된다. 부모를 떠나 도시로 이주해 온 청년들이나 대학생들은 비교적 자유롭지만 학업을 마치거나 다시 부모에게로 돌아갈 때에는 쉽게 불교도로 돌아가게 된다.

4. 태국인에게는 인격적인 창조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없다.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에 의하면 모든 만유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하나도 독립됨 없이 서로가 인(因)이 되고 연(緣)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상관하여 발생하고 변화한다. 우주는 업보의 결과물이고 원인과 결과의 주기의 종류일 뿐이다. 그래서 첫 번째 원인도 생각할 수 없다 보통의 경험에 대해서 원인은 결과를 산출 하고 결과는 원인을 만들어 낸다.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 내어 불교는 세계의 기원에 대하여 우주의 기원에 관하여는 집중하지 않는다. 부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창조의 부분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우주를 그대로 받아 들일뿐이다.
이러한 정통 불교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태국인은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에 대하여 심각하게 질문을 하거나 토론하지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주와 자연은 원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며 우주와 자연 업보의 결과물이고 업보의 법칙으로 모든 것이 운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태국인들에게는 인격적인 창조의 신의 개념이 없다.

B. 민간 신앙으로 형성된 세계관

1. 태국인은 귀신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태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정령숭배를 해왔다. 특히 피( phii, 정령)신앙은 태국인들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피, 불교신앙 브라만 신앙 등이 혼합 신앙을 바탕으로 모든 신앙생활을 전개하고 있다.” 실제 태국인들은 ‘피’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의지의 대상이다. ‘피’는 ‘좋은 피(phii dii)’가 있고 ‘악한 피(phii rai)’도 존재한다. 태국인들에게는 모든 장소에 ‘피’가 존재하며 셀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피’들이 있다. 이에 대하여 이교욱 교수가 연구한 태국의 ‘피’ 신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피신앙은 현재까지 존재하며 따이족의 삶에 크게 영향을 주는 따이족의 가장 보편적인 민속 신앙이다. 피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성을 규정해주는 원리요 법칙이다. 피는 우주와 사회의 신이다(spirit). 사람, 동물, 식물, 물체 속에 존재하며 모든 생명을 다스리며 지킨다. 만물은 스스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에 의해서 유지된다. 사람의 일상생활과 가족과 사회의 모든 시작과 끝에, 그리고 이 모든 것에 피는 총체적이고 유기적으로 관계한다(피아락, guardian spirits). 예를 들면 phii faa(하늘신), phii naa(논신), phii naam(물신), phii muang(도시신), phii baan(마을신), phii puu-yaa, 또는phii puu-taa(조상신).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피의 은혜에 보답하고 경외하는 의미에서 여러 가지 위무와 의례를 행한다. 그런데 사람이 이 피에 합당한 존경을 표시하지 않고 무례를 범하면(핏피) 피는 인간에게 불행과 재앙을 가져다준다. 이때 신과 접해서 사람들에게 신을 섬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중요한 의례를 행하는 사람을 모(moo)라고 한다. 이들이 피를 사용하는 기술을 싸이야쌌(Saiyasat)이라고 한다. 이러한 피의 종류가 매우 많으며 이들에게 제사 드리기 위해서는 사당을 만든다. 모든 피에게 사당이 있는 것은 아니나 중요하고 위험한 곳에는 사당을 세운다. 이러한 사당의 이름을 호피, 르안피, 싼짜오, 프라품짜오티 등으로 불리워진다.

대부분 새롭게 예수님을 믿는 태국인들의 질문은 ‘하나님, 예수님이 강한가?’ ‘내가 섬겼던 귀신이 더 강한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하나의 ‘피(phii)’의 존재로 생각하여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거나 원하는 것을 채워 주지 않을 때에는 교회를 떠나 더 강력한 귀신 ‘피(phii)’를 찾아 나선다.

태국에는 ‘피(phii)’신앙과 아주 유사한 ‘콴(khwah)’신앙이 있다. ‘콴(khwah)’신앙은 민속신앙으로 모든 생명체의 보이지 않는 생명의 정수를 의미한다. ‘콴(khwah)’은 인간의 육체에 머무는데 육체의 특정 부위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귀의 콴, 눈의 콴, 손의 콴, 머리의 콴으로 부르기도 한다. 콴이 몸과 잘 조합하여 존재하면 그 사람은 평안하고 건강하게 된다. 콴이 몸에서 빠져 나간다면 그 사람은 병이 들어 죽게 된다. 그래서 콴 의례를 거행한다. 예를 들어 신생아의 콴을 받는 의례, 임신부, 병자를 위한 콴 의례, 심지어 집을 위한 콴 의례, 배, 벼, 코끼리, 물소와 같은 콴 의례도 있다.

2. 태국인은 주술을 의지하고 있다.

태국인들은 탐분을 통해 죽고 난 다음에 올 내세의 행복보다는 우선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해결에 관심이 많다. 이들은 어떤 물체나 인간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하려고 할 때 자주 주술을 사용한다. 불교의 승려들도 민중들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을 주술을 이용하여 해결해 주고 주술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주술 신앙을 의지하는 이유는 개인의 육체적인 안전과 보호, 물질적인 행운과 평안을 위해서 이다. 이를 위해서 금이나 옥으로 만들어진 부처상 목걸이, 역대 왕들의 사진들, 유명한 고승의 형상인 목걸이, 팔리(pali)어 부적을 직접 문신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차를 구입하였을 때 차 내부의 운전석 위에 천장에 흰색이나 금색으로 점을 찍거나 문형을 그려 넣기도 한다. 운전자들은 아침에 도로에서 말리 꽃으로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꽃 걸이를 구입하여 차량 앞좌석 위에 중앙 거울에 걸어 놓고 손을 모아 합장하여 하루의 행운을 빌며 사고로부터 보호받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본다든지 회개하는 일은 없고 좀더 나은 삶을 간구하는 기복적인 모습만 나타나고 있다.

C. 태국인의 특성과 기질

태국인의 특성과 기질들은 그동안 외국인의 입장에서 많이 연구가 되어왔다. 여기서는 태국의 심리학자 쑨타리 코민(Suntaree Komin)과 난타차이 미추톤(Nantachai Mejudhon)이 태국인이 태국인의 문화적 특성과 심리적 기질 연구한 논문을 중심으로 태국인을 이해하고자 한다.

1. 태국 사회심리학자인 쑨타리 코민(Suntaree Komin)의 연구

그의 논문인 ‘Psychology of the Thai people: values and behavioral patterns’ 에서 태국인의 심리체계를 아홉 가지로 연구 발표하였다. 그의 연구발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중심적(Ego Orientation)가치로 태국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독립적이고 자기 주관적이어서 체면을 중시 여겨 자신의 자존심이 파괴되는 것을 용납 못하며 직접적인 평가나 비판을 회피한다. 자신과 상대방의 권익을 위해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둘째, 고마움을 느끼는 관계를 중심한 가치(Grateful Relationship Orientation)로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갚기를 기대하여 적선하는 일을 한다.
셋째, 원만한 대인 관계를 중심 가치(Smooth Interpersonal Relationship Orientation)로 둔다. 태국인들은 서로 경쟁하기 보다는 상호 원만한 관계를 가지 위해 자기주장을 잘 하지 않고 예의 있고 겸손한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을 잘 보살피고, 친절과 도움을 주고, 능동적이기보다는 기회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자기 통제적이며 자기 억제적이다.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조용하고 신중하고, 자족적이고, 사회적 관계를 중시한다. 부정적인 면에서는 다소 정서적 표현이 억압되어 있다.
넷째, 융통성과 적응성 중심의 가치((Flexibility and Adjustment Orientation)로 엄격하고 경직되고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결정한 것을 자주 번복하는 일이 있다. 태국의 부패 문제도 이런 융통성과도 관계가 있다.
다섯째, 종교 심리적 중심의 가치(Religio-Psychical Orientation)로 인과응보 윤회와 적선 열반과 같은 개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구원을 공덕을 쌓음으로 얻으려고 한다. 영생의 개념을 윤회로 생각하여 기독교의 영생의 개념을 퇴색시킨다.
여섯째, 교육 및 능력 중심 가치(Education and Competence Orientation)로 교육이 진리 탐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신분 상승을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식적이고 기술적인 면보다는 어느 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일곱째, 상호의존 중심의 가치(Interdependence Orientation)를 가지고 있어 정부도 상호 협력을 강조하고 사회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미덕을 장려한다.
여덟째, 오락 유흥중심의 가치(Fun-Pleasure Orientation)를 가지고 있어 반복되는 일이나 재미없는 일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재미있는 여가를 항상 찾는다. 그래서 성경의 공부를 싫어하며 설교의 예화나 간증을 좋아한다.
아홉째, 태국인은 비교적 낮은 과업 성취적 가치(Achievement-Task Orientation)를 가진다. 열심히 일해서 목표를 이루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2. 난타차이 미추톤(Nantachai Mejudhon) 박사의 연구

그의 논문 ‘Meekness: A New Approach to Christian Witness to the Thai People’(온유함: 태국인에 대한 기독 증인의 새로운 접근)의 2장에서 쑨타리 코민(Suntaree Komin)의 연구를 기초로 다음과 같이 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행동의 패턴에 관계된 개념을 미국인의 경우와 대조하여 소개하였다.
첫째, 시간의 개념- 미국인에게 시간은 돈이지만 태국인에게는 현재적 시간을 즐기기 때문에 약속 시간에 좀 늦거나 정해진 시간에 시작하지 않거나 끝나지 않는 상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일을 빨리 마치려는 긴장감을 적게 갖는다.
둘째, 일과 놀이의 개념- 미국인에게는 일과 놀이가 서로 분리되지만 태국인에게는 일하며, 놀고 놀며 일하는 것에 익숙하다.
셋째, 젊음과 나이 듦의 대립적 개념- 미국인에게는 개인주의 가운데 십대 중반부터 독립성이 보장되고 권장하지만 태국인에게는 어른을 존경하고 그들의 부모와 같은 존재로서의 권위를 인정한다. 태국 법은 어떤 이유에서도 자녀가 부모를 고소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넷째, 평등과 계급적 상하구조 대립적 개념- 미국인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음을 믿지만 태국은 불평등성이 인정되는 사회이다. 이런 계층적 차이점은 양자를 상호 보완하며 존중하게 한다.
다섯째, 물질과 영성의 대립적 개념- 미국에서는 부요함이 개인의 근면성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번영이나 성공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주지만 태국에서는 영적 성장이 물질적 성공보다 더 우선시 된다.
여섯째, 변화와 전통의 대립적 개념- 태국인들은 가능한 변화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통과 갈등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독립성과 의존성의 대립적 개념- 미국사회의 가치는 독립과 자기 의존이지만 태국에서는 상호의존의 관계를 지향한다. 어떤 중요한 결정도 혼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고려하여 상의하여 결정한다.
여덟째, 직면과 회피의 대립적 개념 – 미국인들은 직면을 태국인들은 직면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당사자보다 제 3자인 중재자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을 태국어로 끄랭짜이(เกรงใจ, 사려 깊은 마음, 어려워하는 마음)문화라 한다. 바로 타인의 채면을 세워주고 배려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D. 태국어의 언어적인 영향

많은 외국인들이 태국인에 대하여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하며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태국 가정부에게 ‘오늘 내가 저녁 6시에 돌아올 테니 밥을 해놓으라’고 한다면 그녀는 6시에 밥만 해놓는다. 그러나 한국인 가정부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그녀는 밥도 준비하고 여러 가지 반찬도 준비하며 청소도 깨끗이 하여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까 바로 언어의 특성에서 오는 것이다.

태국어의 특성은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고 문장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 놓은 듯 하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태국의 대표 음식인 ‘똠얌꿍(tomyamkung)’ 여기서 ‘똠(tom)’은 ‘끓이다’ ‘얌(yam)’은 ‘무치다’ ‘꿍(kung)’은 ‘새우’이다. 즉 새우를 무쳐서 끓인 음식이다. ‘카우팟(kawpat, 볶음밥)’ ‘카우(kaw)’는 쌀 또는 밥이다. ‘팟(pat)’은 볶다 이다. 여기에 바다(thale), 돼지(muu), 닭(kai)을 붙여 놓으면 돼지 고기를 넣은 볶음밥, 시프드를 넣은 볶음밥, 닭을 넣은 볶음밥이 되는 것이다. 지명, 도구, 서류 등의 단어들은 단어 자체에 해석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국인에게는 아주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설명을 해야 이해를 할 수 있으며, 함께 일 할 수 있다. 복음을 설명할 때도, 하나님에 대하여 설명할 때도 구체적이지 못하면 태국인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E. 태국인에게 복음제시

위에서 태국인의 세계관을 살펴보았듯이 불교의 영향으로 인한 세계관으로 고통의 문제, 공덕과 업보 사상, 사회구조 속에서의 태국인은 불교인 이다. 태국인에게는 하나님의 개념, 창조의 개념,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죄의 개념, 회개의 개념 없다. 민간 신앙으로 형성된 세계관에서는 귀신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태국인에게 있으며, 주술과 정령숭배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 하고 있는 태국인의 세계관을 태국인이 쑨타리 코민과 난타차이 미추톤의 연구에서 태국인의 특성과 기질에서 태국인은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상호 의존적이고 서로의 채면을 세워주고 배려한다. 마지막으로 태국어는 아주 구체적으로 세밀함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연구를 기초로 태국인에게 어떻게 복음을 제시해야 하는가? 태국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관계를 중시하는 태국인들에게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1. 태국인에게 어떻게 복음을 제시 할 것인가?

1) 관계 맺기

위에서 태국의 심리학자 쑨타리 코민(Suntaree Komin)과 난타차이 미추톤(Nantachai Mejudhon)박사의 연구 속에서 태국인들은 ‘관계(relationship)’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난타차이 미추톤(Nantachai Mejudhon)박사 그의 논문 ‘Meekness: A New Approach to Christian Witness to the Thai People’(온유함: 태국인에 대한 기독 증인의 새로운 접근) 6장에서 기독교의 새로운 전도 방법으로 온유함(Meekness)으로 접근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선교사들이 그동안 사용해온 전도전략은 태국의 문화적 상황과 태국인의 관계중심의 기질과는 관계없이 서구 문화에서나 통할 도전적 공격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기독교를 서양의 종교로 전락시켰고, 태국인으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닫게 하였다고 말한다.

태국인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불교와 태국 문화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진정한 관계를 쌓고 직접적인 도전이나 위협보다는 복음제시를 서두르지 않고 보다 긴 시간을 가지고 제시할 것을 그리고 복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토착적인 전략들의 수립을 주장하였다. 효과적인 예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는 방콕사역에서 매주 토요일마 어린이 골목전도를 실시하였다. 각 팀을 나누어 6팀이 21곳에 250여명의 어린이를 만나고 이들 중 70명의 어린이가 교회를 출석하게 하였다. 우선 관계를 맺기 위해 어린이들을 위한 유익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1년 넘게 비가 오나 날씨가 더우나 변함없이 같은 시간에 아이들을 찾아가고 어른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였다. 중요한 것은 1명의 태국인이라도 함께 동행해야 한다. 처음에 이슬람이 사는 지역에서는 쫓겨난 적도 있지만 대부분 태국인들은 변함없이 찾아오면 서서히 문을 열고 아이들을 모아주며 장소도 제공해 주고, 간식도 제공해 준다. 이때부터 아이들을 교회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치앙마이에 이주하여서도 2년 4개월을 불신자 아이들 13명을 모아 기초수학, 영어, 음악을 가르쳐 부모와의 관계를 맺고 복음을 제시했을 때 아이들과 부모들이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어린이를 접촉점으로 삼고 오랜 시간 아이들에게 유익되는 방과 후 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관계전도에서 어린이의 접촉점이 중요한 이유는 어른들은 이미 세계관이 완성되어 폐쇄적인 틀을 형성하고 있지만 어린이들은 세계관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수용성이 강하다.

2) 태국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

태국인은 불교의 영향아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없다. 창조의 개념도 없고, 죄의 개념도 다르고 회개의 개념도 없다. 이러한 개념들을 제시할 때는 태국의 민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구전 설화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개념 – 태국의 남쪽 끄라비에 CCT(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태국기독교총회) 제 17노회 소속인 끄라비싼띠쑥 교회가 있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인 싹다(Sakda)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국에서의 전도는 관계가 참 중요하다. 철저히 기독교인들이 불신자와 관계를 맺고 교회에 들어왔을 때부터 자신은 새신자 교육을 창세기 1-11장을 이해가 될 때까지 가르친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창세기 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위와 같은 중요한 개념들이 태국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성인데 태국인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태국인들은 귀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의 존재를 어떻게 아는지를 질문한다. 그들은 답하기를 ‘내 어머니,’ ‘내 친구가,’ ‘내 마을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같이 영적인 존재를 설명할 때는 이들이 믿고 있고 경험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보고 있는 귀신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존재성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접촉점이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인정하지만 인격적인 창조의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연으로 대체하고 있다. 김순일 선교사와 마하피룬 고승과 대화 내용에서도 마하피룬 고승은 절대자 하나님은 인정하겠지만 자연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니 자연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태국인들에게는 이들의 구전 설화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이교욱 교수가 태국인의 민속 세계관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태국인은 세상과 인간의 창조주가 있었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다. 스미스 알렉스(Smith Alex)도 그의 소논문 ‘구전 전달을 통한 커뮤니케이션과 연속성(Communication and Continuity through Oral Transmission)에서 태국민족의 조상인 따이족의 창조설화를 소개하고 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싸이암, 타이, 따이족에 영존하는 왕이 첫 부부가 창조되었다. 뿌쌍까싸(Pusangasaa)와 야쌍까씨(Yasangasii) 또는 타깔라(Takalaa)와 야이칼리(Yaikalii)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모든 민족들의 첫 조상이다. 따이 르족의 창조설화에서는 영존하는 왕이 뿌쌍까싸(Pusangasaa)와 야쌍까씨(Yasangasii)라는 노인 부부를 세상에 보내어 신비한 조롱박으로 생명을 만들게 했다. 이들이 세상에 와서 그 조롱박을 두 조각으로 반듯하게 쪼개어 그 안의 수많은 씨들이 수 천 종류의 생명체의 태아였다. 그러나 동물과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뿌쌍까싸(Pusangasaa)는 진흙으로 남자를 만들었고, 야쌍까씨(Yasangasii)는 여자를 만들어 생명과 혼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말하는 법 안식하는 법을 가르치고 사람이라 불렀고 그 두 창조자의 안에서 안식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노부부는 수많은 동물들을 만들었다.

둘째, 죄의 개념 –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인식 능력이 전락되어 신에 대한 인식, 인간에 대한 인식, 자연인식이 상실되었다. 이로 인하여 진정한 ‘죄’를 알지 못하고 죄를 다른 것으로 대체 한다. 또한 타락한 인간이 최초로 한 일은 자기 수치-자기의 죄-를 가리는 것이었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3:7-8). 태국인들도 인식능력의 전락으로 ‘죄’를 살생, 미워하는 마음, 거짓말, 교사(敎唆), 불법행위, 탐욕스러운 생각, 계율을 어기는 것, 윤리 도덕 파괴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죄의 결과를 죄로 대체한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태국인들은 수치문화(shame culture)를 가지고 있어서 명예(honer)와 체면(face)을 중요시하여 서로의 치부를 정면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이들은 자신이 잘 못을 하여도 자신의 잘 못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잘 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항상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마이뺀라이(maipenrai 괜찮아)!’ 라고 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잘 못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잘못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무엇인지’ ‘그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실제의 죄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고 자신을 섬기는 것이다(창3:5).’ 이 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롬1:18). 그래서 모든 만물이 고통 중에 있으며, 질병이 발생하여 사망이 찾아 왔다(롬6:23). 사망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심판하신다.(히9:27).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지옥에 대하여 더 확실하게 밝혀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태국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 예수를 믿었다는 통계가 22.6%나 된다.

태국인들은 집착, 욕심, 욕망으로 고통이 온다 하는 것과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를 비교하면 이들에게 죄의 문제를 접근하는데 좋은 접촉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죄의 해결 방법은 전혀 다르다. 태국인들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공덕으로 죄를 씻어 버리고 기독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죄를 해결 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하여 업보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개념이 중요하다.

셋째, 업보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개념-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카르마는 힌두교와 불교에서 다음 생애의 삶이 어떠할지를 결정하는 한 사람의 행동의 의해 만들어지는 힘. 또는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일어나게 하는 행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힘”이라고 말한다. 성경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말하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 9장 27절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환생과 업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기에 믿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며, 믿지 않는 자는 진노의 심판으로 지옥에 영원히 있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관한 부분이 태국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업보와 인과율 공과로 운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것을 얻고 내생에 좋은 환경에서 좋은 신분으로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국인들은 조직적이고, 구체화되어 있고, 설명이 많은 딱딱한 교리보다는 이야기를 더 좋아하여 이 개념을 설명하기에 좋은 예로 태국의 구전 설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태국의 북쪽 치앙마이에는 삥강이 있다. 이 주의에서는 피앙(phiiang)을 숭배하는 탑이 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남쪽으로부터 한 왕이 치앙마이 왕을 공격하러 왔지만 도시 파괴를 싫어하여 이 두 왕은 서로 물속에서 잠수를 잘하는 사람을 각 대표로 뽑아 잠수를 하게 하여 승리하는 쪽이 치앙마이를 차지한다고 경기 조건을 합의하였다. 피앙(phiiang)은 북쪽 대표로 출전하여 잠수를 시작하였다. 잠시 후 남쪽 대표가 숨을 참지 못하고 물에서 먼저 올라왔다. 그러나 피앙(phiiang)은 수면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결국 북쪽왕은 치앙마이를 지켜낼 수 있었다. 왕은 잠수부를 보내 피앙(phiiang)을 찾게 했다. 마침내 피앙(phiiang)을 발견하였는데 그의 다리는 물속에 있는 나무에 묶여 있었다. 왕은 그의 목숨으로 치앙마이 도시를 구원하였고 피앙(phiiang)을 사랑으로 치앙마이 백성과 도시의 구원을 위해 대속제물이 된 것이다.

나의 힘이 아니고 나의 노력이 아니고 내 선택이 아니라 치앙마이의 대표 피앙(phiiang)이 아니고는 치앙마이가 남쪽 왕에게 벗어 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러한 좋은 구전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하여 설명한다면 쉽게 이해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개념이 이해가 된다면 나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 사랑, 자비,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았음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자칫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특히 구원을 값싼 것으로 오해 될 수 있다. 실제로 태국 그리스도인들이 헌금하지 않는 이유는 구원을 값싸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교회의 중요한 역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태국인의 가족과 사회구조상 원만한 대인관계를 중요시하며 자신으로 하여금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여 다른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태국인임을 포기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을 걱정한다. ‘소외를 당하지 않을까’ ‘가정에 분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친구를 잃지 않을까’ ‘직장에서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이러기에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교회가 이들이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가족이 되어주어야 한다.

태국 동북지역의 페차분(phetchabun)도의 촌댄군의 촌대교회(chonden church)가 있다. 담임목회자는 쏨싹(Somsak)이다. 평신도 목회자로서 가족들과 함께 촌댄교회와 14개의 지교회를 개척하여 2천여명의 성도로 성장하였다. 매주 주일예배가 끝나면 각 지교회 목회자들이 금주에 새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있는지를 보고 한다. 보고 할 때 마다 각 지교회는 2-3명의 결신자들이 있다. 다른 교회와 달리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즉시 세례를 베푼다. 이 교회의 특징은 철저하게 관계중심의 전도를 통하여 새 신자가 교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온 교회가 그의 가족, 친구의 역할을 해준다. 심지어 새로운 직장도 소개하며 함께 일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3. 가족 전도

전통적으로 태국의 가족은 부모를 최고로 생각하며 자녀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끊임없이 부모공경의 효에 대하여 교육을 받는다. 부모에게 감사의 태도는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부모와 가족의 의견은 매우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결혼하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부모에게 생활비를 드리며 크게는 집을 지어 드리는 일이다. 태국 사회 전반적으로 자녀와 부모 보호자와 추종자 가난한자와 부자가 서로 상호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국에서의 전도는 가족 전도가 매우 중요하다. 태국 목회자들의 전도 방식을 보면 어린이 전도에 집중하지 않고 어른 전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태국의 가족 문화를 알기 때문이다. 부모를 전도하면 그 가족 모두가 전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태국북부 치앙마이, 치앙라이는 소수부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소수부족일 경우에는 더욱더 가족, 마을, 부족들이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가정의 가장이나 마을의 이장을 전도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종을 하기 때문이다. 난타차이 미추톤(Nantachai Mejudhon)박사도 태국인에게는 가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가족단위로 전도하며 조건 없는 구제와 사회활동을 통하여 전도할 것 선교사들에게 권유하고 있다.

4. 잃은 양 찾기

190년 동안 태국인들은 끊임없이 복음 전도에 접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태국인들이 상당수이다. 감사하게도 태국의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인 CCT(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태국기독교총회)는 교단 소속의 32개의 학교를 통하여 54,581명의 학생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비기독교인 학생들이 입학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율은 4.017명으로 7.36%으로 그렇게 높지 않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들이다. 이들에게 그동안 들어왔던 하나님의 말씀을 축적되어 있어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쉽게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

III. 결론

태국은 13세기부터 불교 국가로 불교의 세계관이 태국인들의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의 세계관 속에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공덕 사상과 인과응보 업보의 사상이 태국인을 지배해왔다. 그래서 태국인은 불교인 이라는 사회와 가정의 구조를 만들어 냈으며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태국인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또한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정령숭배와 주술을 행하고 있다. 태국의 사회 심리학자인 쑨타리 코민과 난타차이 미추톤의 박사를 통하여 태국인은 원만한 관계를 중시하고 서로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사려가 깊지만 직면을 회피하고 즐거움을 중요시 하고 있다. 언어적인 영향으로 태국인과 이야기 할 때는 구체적으로 차분히 이야기해야 한다.

이와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해도 쉽게 열매 맺지 못하였다. 전도가 되어 교회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어려운 상황이 오면 이기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태국인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의 문제는 반드시 시간을 투자하여 태국의 불교문화와 관습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복음제시에 있어서 하나님, 창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개념들과 같이 태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들은 이 개념들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태국의 구전설화들을 발굴하여 비유로 사용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이 개념들이 이해가 되면 죄와 고통의 개념들을 성경에 맞게 제시할 수 있다.

복음을 제시한 이후에 교회에 발을 들여놓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한 사람들을 교회가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동료서 따뜻하게 돌봐주어야 그들이 교회에 정착할 수 있게 된다. 교회는 서둘러서 결신을 시키거나 결단을 내리도록 강요하지 않고 좀 더 기다리며 그들의 가족을 전도하기에 노력해야 한다. 그 시간동안 그가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복음전도에 있어서는 쉽게 반응하는 잃은 양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찾아야 한다.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과제들은 첫째, 태국인이 연구한 태국인의 세계관과 비기독교인 태국인들이 연구한 세계관을 더욱 발굴하여 배워야 하며, 태국인들에게도 자신들의 세계관을 알려주어야 한다. 둘째, 오래전부터 태국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설화들과 이야기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이들의 잃어버린 하나님에 대한 기억들을 되살려야 하며 복음제시에 활용해야 한다. 셋째, 복음 제시 이후 말씀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태국인의 상황에 맞는 성경공부 교재들, 툴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넷째, 선교사는 태국 목회자들이 할 수 없는 영역에 도전하여 태국 목회자들이 전도하고 양육할 수 있는 자료들을 보급해 주어야 하며 번역도 태국인이 좋아하는 형태로 바꾸어 제작하여 보급해야 한다.

인간의 세계관의 변화는 하나님의 영역이지만 위에서 태국인의 세계관을 연구하여 복음제시의 방법들을 통하여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쌓이고 쌓였을 때에 도저히 자기의 세계관의 틀로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변화를 주도하실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의 연구가 복음이 들어 온지 190년이 되었어도 0.64%밖에 되지 않는 태국 기독교의 복음전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김문수, “한국교회 태국 초기 선교사 김순일의 사역과 생애”, 『태국선교 60주년 기념 선교포럼』. (대전: 신창디지털 프린텍, 2016):106-134.
김순일, 『밀림에 세운 십자가』. 서울:도서출판 메시아, 1982.
김종명, “태국에 상황화된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 및 철학계발”, 선교학박사학위논문, Malaysia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2014.
신광준, “태국 불교도 선교 전략에 관한 연구”, 목회학박사학위논문, 풀러신학대학원, 1999.
안점식,『세계관을 분별하라』. 서울: 죠이선교회, 2015.
이교욱. “태국인의 민속 세계관”. 「신학과 선교」 3 (1999): 463-484.
정승회,『베테랑 선교사가 쓴 태국선교 길라잡이』. 인천: 대한예수교장로회출판국, 2003.
조흥국, “태국의 공덕지향적 불교신앙과 민간신앙”,「민속학연구」 19 (2006): 123-143.
Alan R. Johnson, “Exploring Social Barriers To Conversion Among The Thai” 2005.
구글학술검색자료
CCT(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 총회 소속학교에 관한 총회자료
Chomphoo Gotiram, “witii tang haeg khamdii witii haeg kanyuu ruamkan” 구글학술
검색
http://blog.daum.net/ryeopo/1882.
https://en.wikipedia.org/wiki/Karl_G%C3%BCtzlaff.
http://library.payap.ac.th/christianity/doc/history_christian_chiangmai_lamphun.pdf.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92056/20170611/.
http://old.kyominthai.com/bbs/board.php?bo_table=tb30910&wr_id=10.
http://roxborogh.com/Biographies/tomlin2.htm.
http://www.sweetsingles.com/help/sin.html.
Monthree, “kristtacakr Protestant nai pratetthai pii 2015.
Nantachai Mejudhon, “Meekness: A New Approach to Christian Witness to the
Thai People”, (D.Miss. dissertation, The E. Stanley Jones School of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Asbury Theological Seminary, 1997.
Seanet Vol 8. 2011 Ch 4. “Suffering and Compassion in Buddhism and
Christianity,” 63-82.
Smith Alex G. “Missiological Implications of the Key Contrasts between Buddhism
and Christian” Seanet Vol 1: 2003 Ch 3. 31-55.
Steve Taylor, “Gaps in beliefs of Thai Christian,” EMQ, Vol. 37, No. 1 (2001): 7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