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뱅큇을 하면서 (김한요 담임목사)

 

 

선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선교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8  캠퍼스 사역을 할 때였습니다. 물론 신학교 때 선교훈련도 받고얼바나 샴페인 선교대회도 참석했었지만, 정말 선교를 배우게 된 것은 캠퍼스 사역을하며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의 무릎을 꿇기로 헌신할 때부터였습니다.

제가 당시 섬겼던 캠퍼스 교회는 재정적으로 자립이 안되는 교회였습니다. 유학들과 2세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담임목사 생활비 후원하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그런 교회에서 선교사님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믿음 있는 학생 집사님들이 비록 우리가 선교사님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할 수는 없지만 기도로 후원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정기적으로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약 40명의 선교사님들에게 연락하여 가도편지를 보내주시면 교회적으로 기도 후원을해드릴 것을 약속했습니다.

당시는 인터넷이나 이메일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스무  정도의 선교사님들이 편지를 보내주기 시작하셨습니다. 한 달 동안 선교사님들이 보내온 편지를 모아 복사하여서 한 권의 책처럼 만들어 2-3시간씩 그 편지를 읽어가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편지를 한 자 한 자 읽어가며 기도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재정적 후원을 할 수 없다면기도라도해야 한다는 마음에 더 열심히 기도 후원을 하였습니다. 곧이어 기도 편지를 보내주신 선교사님들에게 몇몇 분이 책임지고 정성껏 답장을 쓰기 시작했고, 확실하게 기도 후원하는 교회가 있다는 확신에 선교사님들은 꾸준하게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재정적으로 일전   후원하지 못하는 교회를, 선교사님들은 지나는 길이 있으면 부지런히 찾아와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눈물로 고마워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뵈면서우리 학생들은 더욱 열심히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이렇게 선교를 배워가며 시작한 목회가 지난 5연간 미션 1.8의 비전을 가지고 오기까지 하나님은 부족한 저의 목회 현장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오늘 있는 선교뱅큇은 하나님의 연출 솜씨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선교에 동참했던 베델이 식구들을 격려하며 계속적인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 더 높이 뛰어오르는 베델이 될 것을 믿습니다.

 

김한요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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